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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생활 상식

열등감 우울감 분노 장애에서 손쉽게 벗어나는 방법이 ... ?

by 가치 디자이너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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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자살을 많이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살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하는 비율도 유독 높다고 한다. 이 둘은 상관관계가 있을까, 없을까. 

자살율은 인구 10만명 당 자살 건수를 통계낸 것이다. 그나마 2011년도에 30명이 넘던 것이 지금은 26명 정도로 내려오긴 했다. 이것으로는 체감이 잘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38명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다.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률 1위는 암이나 교통사고 따위가 아닌 바로 자살이다. 이건 정말로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봐야 한다. 왜 우리는 암이나 전염병에만 그토록 열을 올리는가? 사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우울증을 원인으로 한 자살이 아닌가? 

 

이쯤되면 그냥 자살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정부에서 선을 그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그럴까?

이 삶이 그렇게 어이없이 끝나도 되는 것인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누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무려 4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말이다. 

 

내가 군에서 상관으로 모신 바 있던 사람이 죽었다고 연락이 왔었다. 설 연휴 차 부모님댁에 내려가던 날이다. 그 역시 자살이었다. 

사회적 지위를 볼 때나 내가 아는 한 가정사에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던 사람이었다. 

그냥 우울증 증세가 장기간 있었다는 점이 유일한 원인으로 보였다. 

안타까운 일이다. 

즐거워야 할 설 연휴가 그의 유족들에게는 너무나 비통하고 악몽같은 날이 될 것 같았다.  

 

 

우리 현대인들이 많이 겪고 있는 문제, 그것은 열등감, 우울함 그리고 분노 장애다. 

이런 증세를 많이들 가지고 있다보니 서로 치고받고 싸울 일이 많다. 양보할 생각 따윈 없다. 조금의 피해도 용납할 수 없다. 스트레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옆에서 잘 되는 이를 보면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나를 이해해주는 이도 없다. 인정해주는 이는 더더욱 없다. 이 세상은 살아갈 맛이 별로 없다. 

 

남들보다 잘 살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조급함을 버리고 돈 되는 길을 찾아야 하고 또 그 길을 차분히 걸어나가야 차차 불어나는 것이 부이다. 그러니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로서 이걸 기다리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방에 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들이 그래서 인기가 많다. 그렇게 큰 돈을 벌고 나면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아마도 예상컨대 조용히 기부나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진 않다. 나도 잘났다 떠들며 이래저래 허세를 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철학이나 영성 발달 경험에 관심이 없는 이들은 주로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삶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삶이 주는 희열과 고통, 그 양 극단을 끊임없이 경험한다. 당연히 원하는 것은 희열이겠지만 그 희열의 뒷면에는 고통의 그림자가 붙어 따라간다. 무언가 좋은 것을 가지고 나면 당연히 나쁜 것도 함께 소유해야 한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건 그냥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고 사람은 항상 이 문제를 고민해왔고 수많은 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양면성을 발견해왔다. 음과 양, 빛과 그림자 그리고 죽음과 삶.

 

 

제목에서 얘기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단은 인생 내면을 세세히 얘기하기 전에 삶 그 자체부터 조명해야 한다. 삶 그리고?죽음.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것도 모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이리 바쁜 것인가?한 스님이 스스로에게 내뱉았던 질문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서 문제될 것이 없다. 인위적인 죽음이야 누구나 피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동물들도 갑작스런 생존 위협에 매우 기민하게 대처한다. 그러나 죽음 자체는 일반적이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연은 그 형태가 변화하고 순환한다. 무엇이 꼭 죽는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죽음, 즉 멸은 곧 생을 낳고 그 과정은 순환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다를 바 없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니 어쩌니 떠들며 영원한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역시 그 덕에 충분히 괴로움을 겪는 것들이 바로 인간이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필연적이고 꼭 필요한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것에 사로잡히다 보니 큰 그림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때가 되면 눈을 감으면 된다. 영원한 것 따위에 관심을 둘 것도 없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삶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가야 할 때가 오면 또 가면 된다. 세상에는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도 있다.그게 내 문제라고 해서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 어차피 부질 없는 짓이기에 그것을 멍청한 짓이라고 하는 것이다. 

 

 

죽음을 자연적인 형태의 변화라고 인식하고 삶은 즐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러면 삶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면 된다. 끊임없이 희열과 고통을 오가는 것이 삶이라 했다. 철학에서는 이에 대한 다양한 설전이 오갔다. 방법이 무엇이든 행복에 도달하고 싶었던 현자들의 부르짖음이었다. 이러한 역사를 돌고 돌아 나름 최종판으로 정리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많은 가치가 어우러지고 복합적인 연계가 이뤄져 큰 의미를 만들어내겠지만 일단 제목에서 얘기하는 방법에 가장 근접한 하나의 행동론을 말하자면 그것은,

 

'알아차림'이다.   

 

어디 치우쳐 계속해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알아차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화가 날 때에도, 이별 후 과도하게 슬픔에 빠져들 때에도, 실패에 의기소침해질 때에도 또는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냥 어디론가 감정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알아차리는 것이다.욕심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조그만 것을 달성하거나 소유하고 나면 다음은 또 큰 것이 기다리고 있다. 집착이 시작된다. 그게 쌓이다보면 어느새 누가 봐도 과도할 정도의 욕망으로 자리잡는다. 하지만 어쨌건 그 시작은 대게 비슷하다. 그 반대도 있다. 큰 실패를 겪은 본 사람들은 자잘한 아픔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의 큰 시련을 극복한 이들에게 앞으로의 장애는 장애로 보이지 않는다. 아픔과 시련 없이 자라온 아이들의 미래가 오히려 암담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옆에서 코치해줄 능력이 될 때 아이들에게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저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급급한 부모들이 많지만 세월은 흘러가고 인생은 굴곡의 연속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중을 대비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두려움에 휩싸여 이상한 짓을 하고 환상에 젖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 욕심, 욕망, 욕정 그 쾌락에 미치면 뇌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 과도한 슬픔에 빠졌을 때도 그러하다. 배도 고프지 않는다고 한다. 적당히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사람이 이렇게 끌려다닐 때 과연 처방전은 무엇일까. 알아차림이다. 옆에서 알아차리게 도와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물론 쉽지 않다. 잠에 취해 있는 사람을 깨우는 것과 같다. 저 세상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상에 빠져 있는, 슬픔에 울고 있는 이들은 곤히 잠에 취해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같다. 그들 스스로는 이미 알아차림을 행하기 힘들다. 그것은 수련과 노력을 통해 감정이입의 초기에 작동되어야 한다. 그것을 벗어나는 단계에서는 누군가 흔들어 깨워주어야 한다. 잠을 깨면 그제서야 그 모든 게 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도 자신만의 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삶은 소풍이라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즐겁게 살다 가라는 말이다. 부정적인 사고, 그 프레임을 아무 생각 없이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다. 세상은 가혹하고 풀리는 일은 없고 뭘 해도 안되고 웃을 일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행복하라는 거냐며 화를 낸다. 정말 오랜기간 스스로가 만든 프레임에 살아왔을 게다. 그러니 그걸 깬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큰 도전이다. 하지만 알아차림을 통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세상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조그만 각도(관점) 차이로 천차만별이 된다.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과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사람, 산 정상에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사람 각각이 그 시야의 넓이가 다르다. 사람에 치여서 괴로운 사람들은 계속해서 거기 머물지 말고 2층으로 올라가 커피 한잔을 마시면 된다. 그리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면 자연스레 알아차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2층의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여유가 있는 지도 보게 된다. 그 기분이 좋다면 계속해서 그곳에 머물 수 있는 계획을 짜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방법론들이 있다. 돈을 빨리 벌기 위한 방법, 이성에게 돋보이는 방법 등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혹 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런 쾌락을 좇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어느 극단으로 치우쳐 갈 때 동전의 양면같이 따라오는 게 있음을 꼭 알아야 한다. 그 범위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완전히 중도를 걷는 것 자체는 비현실적일 수 있기에 자신에게 맞는 진폭은 적절히 선정함이 좋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면 알아차림 센서가 작동해야 한다. 

 

적절하다, 적당하다는 표현은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다. 적절하게 쾌락을 즐기고 적당하게 리스크를 감내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즐겁게 살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상태를 변화시키면 된다.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다 때가 있으니 인위적으로는 하지 말자. 지금 나를 너무 괴롭게 몰아가는 중이라면 그 감정 밑단에 무엇이 있는지 잘 관찰해보자. 무엇이 나를 그렇게 몰아가는가? 나는 왜 여기에 이끌려가고 있는가?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가치인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다양하고 좋은 질문들을 통해 스스로 알아차림을 실천하자. 그렇게 잘 살아가야 한다. 우울증, 열등감 같은 것에 매몰될 이유가 없다. 주변에 너무 중요하게 생각되던 것들도 다시 한번 바라보자. 내 인생을 즐기는 데 도움될 게 아니라면 버려도 된다. 그게 왜 중요한 것이었을까, 애시당초? 부모의 기대? 이별의 이유?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 아니면 환상?거울을 보고 진지하게 물어봐라. '인생이 즐겁냐? 아니라면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이냐? 그럼 언제 바꿀거냐?'

 

우리에게 이 정도의 자정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문제는 알아차림이다. 처음에 잘 안되어도 좋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 시간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을 가지고 나아가면 된다. 방향만 바르다면 속도는 크게 문제될 것 없다. 그러니 항상 그 방향을 점검하는 데 우리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속도는 우리 통제 밖에 있는 경우도 많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바람이 불면 돛을 올리면 된다. 

 

적절히 즐겁게 살면서 행복함을 누리자. 돈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자신의 그릇에 맞게 적당히 챙겨라.그 정도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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